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다 알면서도 그를 지지한다.”
그는 거짓말을 한다. 공약을 뒤집고, 말 바꾸기를 하고, 사실을 왜곡한다. 언론은 이를 파헤치고, 야당은 맹비난한다. 그런데도 그의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지지층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다. 도대체 왜일까? 우리는 왜 거짓말을 알아도, 때론 기꺼이 속아주고, 심지어 지지까지 할까?
1. 진실보다 중요한 건 ‘내 편’이라는 확신
현대 정치의 핵심은 이념보다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논리나 정보보다는 감정과 소속감을 따라 투표한다. “그가 우리 편”이라는 정체성의 확신은, 그의 거짓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든다.
예컨대 어떤 후보가 명백한 거짓말을 해도, 지지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이건 음해다”, “기득권의 프레임이다”라고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진실 여부보다 중요한 건 ‘누가 그를 공격했는가’다.
2. 거짓말보다 더 무서운 건 ‘상대방의 진실’
많은 유권자들은 현실에서 ‘차악’을 고른다. 누군가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래도 저쪽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선택이 이상적인 판단이 아니라 상대적인 불안 회피일 때, 거짓말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어떤 경우엔 거짓말을 덮기 위한 서사가 오히려 유권자에게 위안을 준다. “그가 그렇게 말한 건 다 이유가 있었어”, “당시엔 어쩔 수 없었잖아”, “상대 진영은 더했잖아” 같은 말들은, 일종의 자기정당화 장치다.
3. ‘능력 있는 거짓말쟁이’에 대한 기대
많은 사람들은 정직한 무능보다는 유능한 기만을 선호하기도 한다. 비록 거짓말을 하지만, 경제를 살리고, 외교를 잘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용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는 원래 더러운 것”, “약간의 거짓은 감수해야지”라는 냉소주의가 퍼진 사회에서는, 정직함은 유치한 이상주의로 밀려나고, 결과주의적 실용 정치가 지지를 받는다.
4. 진실은 복잡하지만 거짓은 단순하다
거짓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간결함’이다. 진실은 언제나 복잡하고 설명이 길다. 하지만 거짓말은 단순하고 감정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인지 부하를 줄여준다.
정치인은 이 점을 잘 안다. 그래서 때론 명백한 사실 왜곡이라 해도, 간명한 구호로 반복해서 외친다. 반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이게 왜 틀렸는지”를 설명해야 하기에 지루하고 복잡해 보인다.
5. 집단적 자기기만: “우리가 틀렸다는 건 인정할 수 없어”
어떤 정치인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유권자에게,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한 정보 수용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 사람을 지지한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수년간의 투표, 정치적 대화, SNS에서의 싸움, 가족과의 갈등 모두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6. 언론 불신과 정보 피로가 만든 방관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언론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유튜브는 선정적이고, 정보는 넘치지만 정리는 안 된다.
이런 ‘정보 피로’ 속에서 사람들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야”,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회의론에 빠진다. 그러면 오히려 자기 진영의 정치인을 비판하기보다 방어하게 된다.
결론: 우리는 왜 스스로를 속이는가
거짓말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지하는 현상은 단지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심리, 사회 분위기,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쩌면 그 거짓말쟁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 아닐까?
“나는 저런 식으로는 못 살아. 나는 저 정도로 비열하진 않아.”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저 사람, 하고 싶은 건 다 하네. 욕먹어도 자기 길 가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욕하면서도 부러워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나는 정직하다.’
그 우월감을 즐긴다. 누군가의 추락 위에 나의 도덕적 우위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와 가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구분하기도 싫어한다. 피곤하고, 복잡하고, 때로는 나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이렇게 말한다.
“정치란 원래 그런 거야.”
“다 거기서 거기야.”
“그 사람은 그래도 우리 편이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지금 이 사회는 거짓말에 엄청나게 관대하다. 그 관대함은 단순한 너그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정치인의 거짓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지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시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그의 거짓말을 외면하는가?
그 거짓은 정말, 아무 상관 없는 일인가?
그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지지하고 싶은 건 아닌가?
민주주의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 있는 시민 없이 결코 굴러가지 않는다.
선거전략가나 선거참여자는 잘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