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역설 - 대통령감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정치는 역설로 가득 찬 공간이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더욱 그렇다. 능력, 품격, 경륜, 도덕성까지 갖춘 '대통령감'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종종 대권 문턱에서 좌절하고, 반대로 정치권의 ‘이변’이라 불릴 정도로 기대치가 낮던 인물들이 대통령이 되는 장면은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다.
왜 ‘대통령감’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대통령감'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짐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감으로 불리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행정 경험, 학문적 성취, 도덕적 기준이 높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계산과 타협, 대중 선동, 감정 동원에는 미숙한 경우가 많다. 즉, 대통령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적 생존력과 선거 전략에 약하다.
두 번째는 이들이 대중과 정서적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은 때로는 합리보다 감정, 정책보다 인물의 ‘스토리’에 반응한다. 대통령감들은 지나치게 ‘정상적’이고 ‘예측 가능’해서 오히려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완벽해서 매력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셋째, 대통령감들은 기득권의 견제를 받는다. 이들이 가진 능력과 청렴성은 오히려 기존 권력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유능한 사람은 관리가 안 된다’는 정치권 내부의 인식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작동한다.
현실 정치가 요구하는 ‘대통령 되기 위한 조건’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 강한 정치적 연합체 - 정당과 조직의 힘 없이 홀로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서사와 감성의 스토리텔링 - 대중은 논리보다 감정에 흔들린다.
- 불확실성과 모호함 - 모든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후보는 오히려 공격받기 쉽다.
- 정치적 흥행 요소 - 갈등 구조를 설계하고 주목받는 언론 플레이가 필요하다.
이 조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인 ‘대통령감’과 충돌한다. 전통적인 대통령감은 신중하고, 안정지향적이며, 과잉된 정치적 흥행을 경계한다. 그러나 대중정치는 그런 인물을 ‘재미없다’, ‘무색무취하다’며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례: 대통령감이었으나 대통령이 되지 못한 사람들
한국 정치사에서 대표적으로 대통령감이라 불리며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인물로는 김근태, 이회창, 김무성 등이 있다.
- 김근태: 도덕성과 진보적 철학의 아이콘이었지만, 대중 정치에서의 감성적 흡인력 부족, 조직 결핍으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 이회창: 판사 출신으로 행정 능력, 보수적 안정감, 청렴한 이미지까지 갖췄지만, 세 번의 대권 도전에서 모두 실패했다. 정치적 카리스마와 대중적 매력의 부족이 원인이었다.
- 김무성: 정치적 경륜과 조직 장악력은 있었지만, 과도한 현실주의와 흥행 부족으로 스스로의 상승 동력을 상실했다.
반면, 대통령이 된 인물들 —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등 — 은 초반에는 대통령감이라 불리지 않았으나, 대중의 감정과 시대정신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다. 언더독 서사, 반기득권 이미지, 예측 불가능성 등이 ‘대통령감’이 아니어도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어줬다.
대통령감과 대통령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과 ‘대통령이 되는 사람’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이 둘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있음을 증명한다. 정치가 감성의 영역이고, 권력이 생물이라면, 진짜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닌, ‘대통령이 되는 법’을 아는 자가 된다.
그리고 이 역설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가장 대통령 같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가장 대통령 같은 사람은 후보자 명단에서 사라지는, 정치의 아이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