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들은 왜 배가 고픈가
아귀들은 왜 배가 고픈가
– 끝없이 굶주리는 권력과 자본의 전쟁터
불교의 육도윤회에서 아귀(餓鬼)는 가장 처참한 존재로 묘사된다.
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지만 목은 바늘구멍만 하고,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괴물.
그들은 전생에 탐욕을 부린 죄로 그런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 사회, 경제 시스템을 보면
우리 모두가, 특히 그 안에서 권력을 나누려는 자들이
하나같이 그 아귀를 닮아 있다.
이미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위해 싸운다.
이미 앉은 자들이 더 높은 자리를 노린다.
그들의 배는 부풀었고, 그들의 목구멍은 좁아 터진다.
인간은 왜 아귀가 되는가
이 시대의 권력자들은 굶주려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갖고 싶어서, 더 오래 지배하고 싶어서 싸운다.
그 배고픔은 실제 결핍이 아닌, 상대적 욕망의 허기다.
권력은 나눌 수 없고, 부는 비교된다.
그래서 이들은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선택하고,
연대보다는 투쟁을 택한다.
그리하여 정치도, 기업도, 언론도 하나의 아귀 전장이 되어간다.
구조는 탐욕을 명령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 아귀의 굶주림이
단순한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 경쟁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 이기지 않으면 도태되며,
- 더 많이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사회 구조.
그리하여 자본은 무한히 팽창하고,
정치는 명분보다 생존 논리에 종속되며,
도덕은 실리 앞에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탐욕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탐욕이 정당화되는 순간이다.
정치를 위한 정치는 곧 권력을 위한 권력으로 타락한다.
부의 축적이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그 부는 또 다른 아귀를 낳는다.
“배고픈 자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싸우는 세상”
— 이 문장이 오늘의 현실을 압축한다.
아귀들의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아귀들은 왜 배가 고픈가?
그들은 굶주리지 않았다.
단지 더 크게 삼키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 전쟁터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때론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무엇을 욕망하며, 어디까지 삼킬 것인가?
아귀을 알고 부터 새로운 샒을 살아보려 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삶도 구조화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