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대통령 되는 시대인가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인가?" 최근 정치권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탄식이다. 한때 대통령이란, 뛰어난 정치 감각과 탁월한 리더십, 국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명감을 갖춘 소수의 인물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정치 문화가 달라지면서 대통령직은 더 이상 '신성한 소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대통령직은, 때로는 대중의 일시적 감정과 미디어의 조명 아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자리처럼 보인다. 이는 과연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일까, 아니면 위험한 변질일까?
1.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상징성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수장이 아니다. 대통령은 한 국가의 얼굴이자, 시대를 이끌어가는 방향타이다. 대통령의 한마디, 한 걸음, 심지어 표정 하나에도 국운이 실릴 때가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단순히 인기나 선거 전략만으로 뽑아야 할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존망을 맡길 수 있는 "최고 책임자"여야 한다. 과거 우리는 대통령을 "준(準)성인"에 가깝게 여겼다. 지도자의 인격, 경륜, 국제적 감각, 정책 전문성은 물론이고, 개인적 도덕성까지 혹독하게 검증했다. 물론 이러한 기준도 완벽할 수는 없었고, 때때로 그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국민 스스로가 품었던 "높은 기대"와 "엄정한 잣대"였다.
그런데 오늘날, 그 잣대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 대중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자를 국민이 선택하는 체제다. 이 말은 곧, 대통령이 될 자격을 국민이 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국민이 원하면 누구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상이지만, 반대로 대중의 감정이나 일시적 열광에 기대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권력을 잡을 위험도 항상 존재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 소비 속도가 빠르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러한 위험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정치인은 긴 시간 동안 정책 역량을 입증하기보다, 몇 번의 자극적 발언이나 SNS 파급력만으로 유명세를 얻는다. 논리적 토론과 정책 제안은 뒷전이 되고, '이미지 정치'와 '팬덤 정치'가 대세를 이룬다. 결국 대통령 선거도 인기투표처럼 변질되고, 후보자의 실질적 능력보다 인지도와 화제성, 심지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당락을 좌우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3. 미디어 정치와 '아무나' 대통령 가능성
미디어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정치의 본질을 흐리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 후보의 발언 한 줄, 제스처 하나가 짧은 영상 클립으로 소비되고, 수십 초의 영상으로 국민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누가 실제로 나라를 잘 운영할 수 있는가'보다는 '누가 더 재미있게 보이는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문성과 정책 이해도가 아니라, 대중의 즉각적 반응을 끌어내는 능력이 중시된다. 유능한 행정가, 외교 전략가는 카메라 앞에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말장난과 선동에 능한 이들이 조명을 받는다. 대중은 종종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치인의 진정성보다 쇼맨십에 이끌린다. 이 흐름 속에서 대통령은 더 이상 '뛰어난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쇼맨'이 되어가는 것이다.
4. 무자격 정치인의 출현과 그 결과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가 대통령이 될 경우, 그 대가는 국민 모두가 치른다. 정책 실패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져온다. 외교 실수는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경제 무능은 서민 경제를 붕괴시킨다. 사회 통합이 아닌 분열을 조장하는 지도자는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무능한 지도자는 재앙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결정 앞에서 경험 없는 리더는 갈팡질팡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5.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무나 대통령 되는 시대"를 막으려면, 결국 유권자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대통령은 연예인도, 운동선수도,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국가를 이끌 전략과 철학, 국민을 통합할 리더십,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결단할 수 있는 용기와 경륜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선거는 결국 국민이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유권자가 순간의 분노나 인기, 유행에 따라 표를 던진다면,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과 자식 세대가 치르게 된다. 미디어에 휘둘리지 말고, 포장된 이미지를 경계하자. 화려한 수사 대신 정책의 실질을 보자. 인기투표가 아닌, 국가 지도자를 뽑는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잊지 말자.
대통령은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통령을 뽑는 국민도 "아무렇게나" 뽑아서는 안 된다.
결론
'아무나 대통령 되는 시대'라는 탄식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경고다. 대통령직의 품격은 결국 국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는 것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다. 지금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