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발하는 공약이 통하는 시대인가
아직도 남발하는 공약이 통하는 시대인가
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후보들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에 이르는 공약을 쏟아낸다. 경제성장률 5% 달성, 일자리 수십만 개 창출, 주택 공급 수백만 호, AI 선도국가 도약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약속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안다. 이런 공약 중 상당수는 실현 가능성은커녕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공약 남발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 그런가? 시대가 변했는데도, 공약을 남발하면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착오적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1. 과거는 공약의 시대였다
과거 한국 사회는 '개발 공약'이 표심을 좌우하는 시대였다. 박정희 시대의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IT 인프라 구축 등,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곧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단순한 약속 하나라도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몇 년 안에 고속도로가 깔리고, 산업단지가 생긴다"는 약속만으로도 지역 민심은 움직였다.
당시 유권자들은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나 실행 가능성보다는, '큰 그림'과 '국가 성장'에 대한 갈망을 보았다. 대통령 후보가 제시하는 비전은 희망 그 자체였고, 세부사항은 '선출 이후'의 문제로 여겨졌다.
2. 변한 시대, 바뀌지 않은 정치인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좋은 말"만 듣고 투표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유튜브, SNS를 통한 실시간 정보 공유는 후보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면밀히 분석하고 검증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팩트체크 기사가 쏟아지고, 정책 전문가들의 즉각적인 평가가 이어진다. 공약이 현실성이 없으면 즉시 비판받고, 조롱거리가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들은 여전히 20년 전, 30년 전 방식을 고수한다. 철저한 준비도 없이, 실체적 내용 없이, 실현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약속을 남발한다. "크고 좋은 말"을 하면 표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것은 정치인의 무능과 동시에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위험한 시대착오다.
3. 공약 남발이 통하는 구조적 이유
그렇다면 왜 이런 공약 남발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걸까?
- 정치 불신과 허탈감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면 유권자들은 오히려 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에 기대를 건다.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이 사람만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생긴다. -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양극화가 배경에 있다.
취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유권자들은 당장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끌리기 쉽다. - 언론과 포퓰리즘 정치의 부추김도 있다.
정책의 깊이를 다루기보다는, '누가 더 큰 약속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언론 환경이 존재한다. 정치인들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4. 유권자의 변화가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약 남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유권자는 후보가 내세운 '약속'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따져야 한다.
-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 법률적 제약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 단계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존재하는가?
단순히 '좋은 말'에 박수치는 유권자가 아니라, '현실 가능한 계획'을 묻고 따지는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달라져야 하지만, 정치인들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5. 공약 남발 시대를 끝내려면
앞으로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모든 공약은 다음 세 가지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 구체성: 목표 달성 수단과 방법이 명확한가?
- 실현 가능성: 재정, 제도,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실제 이행이 가능한가?
- 책임성: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약은 무시하거나, 오히려 감점 요소로 삼아야 한다. 또한 언론 역시 '공약 발표'를 단순 중계할 것이 아니라,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문제점을 검증하고 분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공약을 했느냐'가 아니라, "단 한 가지 공약이라도, 그것을 끝까지 실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이다.
결론
아직도 공약을 남발하면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갈수록 낡아지고 있다. 유권자들이 깨어나고, 언론이 변화하고, 사회가 성숙할수록, 공약 남발 정치인은 점점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공약을 듣고 감탄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공약을 듣고 따지는 시대다. 우리는 "무엇을 하겠다"는 말보다, "어떻게 해내겠다"는 답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바꾸는 시작이다. 지금의 국민은 이전의 국민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다 아는 세상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행사하는 시대다. 정치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국민의 수준에 맞게 언행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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