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권력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은 권력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 권력과 진실의 불가분적 관계를 돌아보다
우리는 왜 ‘진실’을 의심하게 되었는가
21세기 초입,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뉴스, 여론, 통계, 전문가 분석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팩트’가 존재해도 해석은 분열되고, 누군가에겐 진실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조작으로 비춰집니다. 이 혼란의 근저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진실은 결코 권력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은 객관적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이 말은 충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진실은 언제나 힘 있는 자의 언어로 재단되어 왔고, 권력은 늘 진실을 정의할 힘을 가져왔습니다. 권력은 사실을 통제함으로써 진실을 형성했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진실'을 믿기보다는 '진실처럼 보이도록 만든 무엇'에 순응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만들고 통제하는가
1. 진실의 ‘생산자’로서의 권력
정치, 언론, 기업, 종교 — 이 네 가지는 현대 사회에서 진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권력체들입니다. 특정한 보도자료 하나, 교과서의 서술 방식, 통계의 인용 선택, 연설의 수사 한 문장조차 진실의 프레임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실업률 수치도 “완만한 회복세”라고 표현하면 낙관적 진실이 되고, “여전히 불안정한 고용시장”이라고 하면 위기 서사가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권력은 해석의 주도권을 통해 진실을 구성합니다. 진실은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강조하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은 항상 권력에 의해 배열되고 편집된 결과물입니다.
2. 침묵과 왜곡: 권력의 또 다른 전략
진실은 말하는 것만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은 ‘말하지 않는 것’에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권력은 불리한 진실을 침묵시킴으로써, 그 진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치 스캔들, 산업재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 침해와 같은 사안들은 초기에 거의 보도되지 않거나 축소·왜곡된 형태로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권력은 가짜 진실을 만들어 진짜 진실을 덮습니다. ‘거짓말’이라기보다, 반쯤 사실이거나 맥락을 제거한 채 나열된 사실들로 이뤄진 ‘선택적 진실’은 사람들을 더욱 교묘히 속입니다. 이처럼 진실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에 따라 때로는 확장되고 때로는 제거됩니다.
3. 권력에 저항하는 진실의 힘
그렇다고 진실이 영원히 억눌리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은 때때로 권력을 위협하고 무너뜨립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세월호 참사, 미투 운동, 팬데믹과 백신 정보 공방 등 진실을 추구하는 개인 혹은 집단의 행위가 거대한 권력의 균열을 만들어낸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진실이 권력과 대립할 때만 존재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가 새로운 권력의 기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실을 외치는 자들은 권력에 밀려 고립되고 탄압받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진실의 권위’가 다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 순간, 진실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사회를 재구성하는 동력이 됩니다.
진실을 믿는다는 것, 권력의 구조를 직시한다는 것
진실은 힘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언제나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만 작동합니다. 진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가 말하는가,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무엇을 침묵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와 효력을 달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 동시에 ‘권력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진실이 숨겨지고, 왜곡되며,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반복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대한 진정한 접근입니다. 결국 “진실은 권력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책임의 선언입니다.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권력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진실을 지키는 싸움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 없이 진실은 늘 조용히, 권력의 뒷편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감상적 애정이 아니라, 진실을 지킬 용기와 구조를 뒤흔드는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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