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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절규인가, 욕망인가 - 그의 진심을 알고 싶다

그래도 믿을 건 정치다 2025. 5. 4. 06:00

 

한덕수, 절규인가, 욕망인가 - 그의 진심을 알고 싶다

2025년 대한민국 정치의 풍경은 여느 때보다 어지럽고 복잡하다. 탄핵 정국의 후폭풍, 보수 진영의 재편, 진보 진영의 혼란 속에서 차기 대선을 향한 시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혼돈의 한복판에 한 인물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다.

그는 대중적인 스타 정치인은 아니다. 말보다 실무로,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technocrat 출신의 대표 주자다. 그러나 지금,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물음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한덕수, 그는 절규하는가? 아니면 욕망하는가?”

1. 그는 왜 지금,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한덕수는 늘 “정치는 내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커리어 대부분은 공무원이었다. 경제기획원, 외교통상부, 국무총리, 주미대사 등 오직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어느 순간 그가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이들은 의아해했다.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출마 배경을 단순히 권력욕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인물에게 청와대는 '다음 스텝'이기보다 '최종 종착지'다. 정권을 잡고 장기 집권을 꿈꿀 나이는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결심은 오히려 절실함에서 비롯된 ‘절규’처럼 보인다. ‘이대로 나라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 ‘이 혼란을 정리할 사람은 결국 나뿐’이라는 자기 확신 말이다.

하지만 그 절규가 진정 ‘국가를 위한 것’인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노련한 행정가의 마지막 꿈’은 결국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이 나라가 산다’는 자기 중심의 서사에 기반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공공을 위한 절규가 아니라, 오래 눌러왔던 개인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2. ‘욕망’의 정치, 그 안에 숨겨진 진심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이자 ‘모든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의로 포장하고, 또 누군가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미화한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자리는 결국 권력의 정점이다. 그 자리를 향한 모든 발걸음은 필연적으로 ‘욕망’을 수반한다.

한덕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지금 그가 선택한 길은 누군가의 추천이나 당의 요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왔다. 고요한 수면 아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개인적 야심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 욕망은 비난의 대상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이 솔직하다면, 그리고 그 욕망이 국가의 방향과 겹쳐진다면, 정치인은 그것을 당당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것이 진심인지, 혹은 타이밍에 맞춰 연출된 ‘정치적 절규’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라가 위기라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은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정치인이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속에서 '진심'은 소비되었고, 유권자들의 신뢰는 점점 말라갔다.

3. 한덕수의 스타일, 그것이 그의 진심을 말해준다

한덕수는 소리 높이지 않는다. 군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없다. 대중 정치보다 시스템과 질서를 중시하는, 말 그대로 '공무원 정치'의 상징이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능률적이지만, 때로는 거리감 있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그가 “욕망하는 자”인지, “절규하는 자”인지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권력을 얻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고, 대중과 교감하는 ‘쇼’를 준비한다. 그러나 한덕수는 그렇지 않다. 그는 여전히 대중 연설을 부담스러워하며, 카메라 앞에서도 조심스럽다. 한마디 한마디는 조율되고, 감정 표현은 제한적이다. 정치적으로는 치명적 약점이지만, 그 속에 숨은 ‘불편함’은 진심의 징후일 수도 있다.

자기 연출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 욕망을 포장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연출되지 않은 ‘절규’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절규의 방향이다. 그가 말하는 ‘국가의 위기’가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오직 그의 프레임 속에서만 위기처럼 보이는 허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4. 우리는 그의 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덕수의 진심은 아마 말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중 정치를 위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의 선택을 봐야 한다. 어떤 인재를 기용하는지, 어떤 제도를 손대려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정치적 우선순위에 두는지 말이다.

그의 욕망이 단순한 ‘권력욕’이라면, 그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에 기대고, 여론을 계산하며 발언할 것이다. 반대로 그의 절규가 진심이라면, 그는 인기 없는 개혁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타협보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이전 국정운영 방식과도 연결된다.

결국 유권자의 몫은 ‘그의 진심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에필로그

한덕수, 그가 절규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관료가 마지막으로 내는 시대의 경고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욕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조용하지만 뿌리 깊은 권력 본능의 발현일 것이다. 절규든 욕망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이다. 그가 말하는 '국가'가 과연 '국민'과 동일한 의미인지, 아니면 오직 '그가 이상적으로 설계한 질서'를 뜻하는 것인지, 우리는 끝까지 물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자기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하는 언행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래야 한다. 이번에 특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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